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먼나라 이웃나라/문제점/스위스 (문단 편집) === 근세 === * 종교 전쟁을 설명하는 부분에 나오는 프랑스의 예(위그노 전쟁)로 나오는 '성 바르톨로뮤 대축일의 대학살' 때 어린 당시 국왕이 '[[앙리 4세]]'였고, 이 사건 이후로 위그노(개신교도)들은 박멸당했다. - '''당시 어린 국왕은 [[샤를 9세]]다.''' 앙리 4세는 샤를 9세보다 3세 어린 손아래 매부로 [[위그노 전쟁]]을 종식한 인물이다. 덧붙여 앙리 4세는 [[위그노]]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했기 때문에 위그노에 관대하여 '[[낭트 칙령]]'을 공포, 위그노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해 유능한 상공시민층이 대부분인 위그노들을 국내에 체류할 수 있게 해주었다. 그리고 이 때문에 가톨릭 광신자에게 암살당했다. 위그노들이 국외로 탈출한 건 [[루이 14세]]가 낭트 칙령을 폐지한 이후에 일어났다. 간단히 말해 위그노 전쟁의 시작과 끝을 반대로 말했다. 독일 편에서도 나온 오류.(03) 그나마 나중에는 샤를 9세라고 개정되었다. * [[가톨릭]]/[[개신교]] 전쟁에서 가톨릭이 개신교도들을 몰아냈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 프랑스는 국교가 가톨릭이다. 결론부터 말해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의 주도인물과 이후 경과, 결론이 매우 잘못 설명됐다. 실제로는 카트린 드 메디치가 아닌 기즈 공작의 주도로 이루어졌다. 사실 누가 주도했는가에 대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프랑스 현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. 그리고 당시의 어린 왕은 [[앙리 4세]]가 아닌 [[샤를 9세]]였다. 오히려 앙리 4세는 이 전쟁을 평화롭게 끝낸, 즉 선량왕이다. 이하 내용은 먼나라 이웃나라에 기재가 되어있지 않은 내용이다. 당시 프랑스 내 [[칼뱅주의]] 개신교도 집단인 [[위그노]]는 이후 바로 힘없이 쫓겨난 게 아니라 얼마 안 가 '''정부 타도를 외치며 무장봉기를 하고 매우 치열하게 싸웠다.'''[* 이들 위그노들은 프랑스 입장에서는 참 골칫거리였는데 마냥 무력으로 때려잡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놔두자니 분리독립까지 요구하는 등 이래저래 문젯거리였다. 결국 루이 13세때 리슐리외가 한번 위그노들을 때려잡긴 해서 기를 죽이는데 성공했다.] 샤를 9세는 이 일에 충격을 받아 지병이었던 [[결핵]]이 악화되어 23세로 요절했고, 왕위는 샤를 9세의 동생인 [[앙리 3세]]에게 넘어갔으나 그조차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사망하면서 결국 샤를 9세와 앙리 3세의 여동생이었던 [[마르그리트 드 발루아]]의 남편, 즉 샤를 9세와 앙리 3세의 손아래 매부인 앙리 드 부르봉이 뒤를 이어 프랑스의 국왕으로 즉위했으니 그가 바로 앙리 4세이다. 그러나 가톨릭과 위그노 중 어느 한 쪽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앙리 4세의 [[낭트 칙령]]으로 화해했다가, 이후 루이 14세 때 다시 박해가 가해졌고 결정적으로 바로 '''[[태양왕]] 시기'''에 낭트 칙령이 폐기되자 위그노들 대다수가 자진해서 프랑스를 떠났다.[* 그나마 남아있는 이들은 형식적으로나마 가톨릭으로 개종해 남을 수 있었는데 이들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다시 개종한다.] 즉,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나온 것처럼 위그노들은 15~16세기에 [[프랑스]]에서 쫓겨난 게 절대로 아니다. 어쨌거나 위그노들이 프랑스를 떠난 사건은 프랑스의 산업화를 책임질 인재들이 국외로 대거 유출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고, 그 때문에 [[가톨릭]]은 가톨릭대로 조인트를 까인다. 정확히 말하면 18세기 말 [[프랑스 혁명]]부터 19세기 말 제 3공화정 헌법(시기상으로는 1881~1884 정도)에 의해 교육, 지방에 대한 권한 등을 중앙 정부에게 내주는 것으로 과거의 영광을 상실한다. 위의 과정을 겪은 현재 프랑스는 '''공식적으로 [[라이시테]]로 대표되는 적극적 [[세속주의]] 국가다'''. 그냥 [[국교]]가 없는 걸 넘어서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종교색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. 가령 학교에서 벽에 십자가를 걸거나 부르카를 착용하는 행위 등 종교적 논란 및 갈등을 불러올 소지가 있는 모든 행동을 법으로 금지해 버렸다. 500여년이 넘게 지났어도 저 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.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부르카의 경우 다른 종교 측에서 이를 가지고 논란을 조장할 소지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. 실제로 이슬람의 복장인 부르카 착용 금지에 대해 의외로 [[유대교]]의 [[랍비]], 가톨릭의 [[신부(종교)|신부]], [[개신교]]의 [[목사]]들이 꽤 [[반대]]하는 편이다.~~동병상련인가?~~ 물론 국교가 없는 것일 뿐이지 [[종교]]를 못 믿게 하는 건 아니니 아무래도 [[가톨릭]]의 비중이 높은 건 맞지만... 마치 [[한국]]의 국교가 [[유교]]라고 하는 것과 같은 오류. 다행히도 21세기판에는 앙리 4세가 샤를 9세로 변경, 프랑스의 국교가 가톨릭이라는 내용이 없어지고 국민의 90%가 가톨릭교도라고 했으며[* 그런데 [[프랑스]]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요즘은 신자 수가 많이 줄었다. 이는 프랑스 뿐만이 아닌 서구의 대다수 기독교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벌어지는 문제로 가톨릭, 개신교 가릴 것 없이 실질적 기독교도의 수는 많이 줄고 있다.] 개정판의 프랑스 편에서 낭트 칙령과 라이시테 제도가 추가되었다.(03,12)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